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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by 샐린저 │읽어볼 만한 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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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by 샐린저 │읽어볼 만한 책

피토니아 2020. 12. 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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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밀밭

 

 

샐린저가 써낸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가 중학생 때 읽은 책이다. 소설책에서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내게 처음으로 소설의 재미(?)를 찾게 해준 책이다. 내게 소설은 시험지에 나오는 문제를 맞히기 위한 단어의 나열에 불과했다. 공부의 대상이었지 놀이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찮게 집어 든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벅참이 다가왔다.

 

어른은 아이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한다. 그럼 아이는 천진난만한 대답을 한다. 가수가 되고 싶다느니 의사가 되고 싶다느니 변호사가 되고 싶다느니 말한다. 그게 얼마나 되기 힘든지도 모르고 그냥 말해버린다. 어른은 아이의 꿈을 듣고 허허 웃으며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격려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포기해야 할 것들이, 감내해야 할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가족의 아픔도, 친구와의 즐거운 추억도, 스스로의 건강도,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대가로 지불된다. 설상가상 모든 악조건을 버틸지라도 꿈을 못 이룰 수도 있다. 더 슬픈 건, 설령 꿈을 이룬다할지라도 자신이 바라던 이상과 마주하는 현실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란 사실이다.

 

음악인은 광대가 되어 있고 의사는 생명에 무감각해진다. 변호사는 정의를 내팽개치고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다. 그때 겪어야 될 좌절을 꿈을 이루기 전까진 알 수 없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슬픈 일이다.

 

 

▲올해 겨울 여행 때 찍은 전남 순천만습지 갈대밭, 바람에 흩날리는 같대가 장관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적에도 나에겐 꿈이 없었다. 딱히 되고 싶은 게 없었다. 장래희망란을 채우는 건 고역이었다. 거짓말을 하기 싫었지만, 빈칸을 채워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럴 듯한 장래희망을 적어야 했다.

난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적었다. 부유하지 못한 형편이었기에 부유함을 원했던 것이다. 그건 내가 진정 바라던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코울필드의 꿈은 책 제목처럼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이 실수로 절벽 쪽으로 가면 아이를 절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안내해 주는 것이다. 

 

코울필드는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한심한 것처럼 보일 꿈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건 변호사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런 꿈을 얘기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코울필드의 꿈을 듣고서, 나는 '아 저게 바로 내가 바라던 꿈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변호사보다 의사보다 사업가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훨씬, 따뜻해 보였다. 변호사나 의사나 사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대해 보였다.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모두 말이다.

 

인생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즐기고 싶다. 다그치지 말고 자유롭고 기쁘게 어린아이처럼 뛰어놀고 싶다. 그렇게 뛰어노는 자들을 응원하고 싶다. 뭔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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